좋은 건축 실현을 위한 제언(전남북건축사신문, 2025년 5월호 시론)
- 2025.05.21 10:20
좋은 건축 실현을 위한 제언
문창호(대표, (주)건축사사무소 균형)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
AI에게 물어보았더니, 좋은 건축은 기능적이고 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 중심성, 지속가능성, 친환경성, 구조적 안전성, 맥락적 지역성, 사회적 공공성, 창의적 혁신성 등을 들고 있다. 결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요소들이 균형적으로 적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서울올림픽 때 나를 찾아온 외국 건축 전문가와 함께 서울의 이름있는 현대건축을 둘러본 때의 지적이 기억난다. 디자인은 멋진데 디테일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념은 좋으나 기술적으로 부족하여 건축물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좋은 건축이라고 보기에는 아쉽다고 본다.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은 무엇인가?
현대인은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하여 외롭고 괴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치유 환경은 인간의 물리적, 정신적, 정서적 회복을 도와주는 공간이나 환경을 의미한다. 즉 건축에서 중요 요소로는 자연경관, 자연채광 및 환기 등의 자연적 요소, 조명, 소리, 냄새 등의 감각적 요소, 프라이버시 보호, 색채계획 등 심리적 요소, 공동체 공간, 개방 공간 등 사회적 요소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가 무한경쟁 체제이기 때문에, 거의 누구나 스트레스가 과중함을 느끼며 산다. 따라서 이런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건조 환경은 반드시 치유 환경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와 건축공간에 자연적 요소의 도입은 최소한의 치유 환경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스웨덴 병원 건축 답사 시 설명을 들었는데, 그들이 추구한 최고의 병실은 고도화된 설비의 공간이 아니라, 창문을 통해서 지면, 가까이에 흐르는 시냇물, 화초가 풍부한 정원, 그리고 맑은 하늘까지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즉 건축공간 가까이에 녹색(green)과 청색(blue)의 자연적 요소가 도입되어, 사람이 직접 이를 눈과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조망이 최고의 치유 환경이라고 간주한다.
주거로서 고밀도/고층 아파트는 어떨까?
인간의 3가지 기본욕구로 의식주를 꼽는다. 주변을 보면 옷을 입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주거가 소홀하게 다뤄지는 점이 건축 전문가로서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고밀도/고층 아파트에 대하여 걱정이 앞선다. 고밀도/고층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심리적/생리적 문제, 재난에 취약한 점, 사회적 불균형 문제, 도시 경관과 환경문제, 장기적 유지 관리 문제 등이 지적된다. 과연 우리의 고층 아파트가 편안한 주거 환경이 되고 여기서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저층아파트에 비하여 고층 아파트가 출산율이 낮다는 조사도 있다. 또한 추후 시간이 지나면서 고층 아파트가 노후화되면 현재와 같은 재건축 방식이 지속 가능할까?
이제는 우리 건축 전문가들이 주택 문제를 양적인 해결에만 급급하지 말고, 질적으로 향상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즉 집을 경제적 상품으로만 보기보다는 본연의 거주성을 회복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여전히 국가적인 선거 캠페인에서 후보들은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양적인 확대만을 제시한다.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복지 차원이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주거의 치유 환경에 대한 최소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주택은 거주자를 위하여 치유 환경의 요소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과연 고밀도/고층 아파트에서 어떻게 치유 환경이 가능할까? 아파트 동수를 줄여서 주민의 조망을 위한 시야를 충분히 확보하고, 실내화한 발코니를 외부공간으로 되돌리고 여기에 풍성한 녹지공간을 조성하면 최소의 치유 환경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공건축의 프로세스와 공사 계약 방식
공공건축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보면, 기획, 설계, 시공, 유지 관리 등으로 구성된다. 프로젝트의 시작인 기획이 공공건축의 품질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본다. 따라서 건축기획은 매우 중요하나 좀 소홀하게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 기획 업무는 공무원이 직접 담당하거나 “건축기획 보고서”라는 형식으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하기도 한다. 몇 가지 후속 절차를 거쳐서 기획 업무는 마무리된다.
필자가 지역의 공공건축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기획 업무의 주요 쟁점 사항으로는 낮은 공용 면적비와 부족한 건축공사비(이에 따라 산정되는 낮은 설계비)를 지적할 수 있다. 즉 면적 프로그램(space program)의 완결성 미비와 추정 공사비 부족이 핵심이고 공공건축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국내외 우수한 건축사례 분석을 통하여 충분한 공용면적을 포함한 합리적인 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최근 완공된 유사사례를 참고하여 미래지향적인 공사비 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국민의 건축에 대한 눈높이는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수준이나, 건축을 실행하는 우리 건축 분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건축계는 각 전문 분야별로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건축의 시작인 기획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어, 면적 프로그램과 공사비 단가 적용 등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잘못 추정된 공사비는 설계비가 낮게 책정되고, 부실한 설계가 이루어지고, 부실한 공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공사 계약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총액계약(lump sum contract) 방식과 더불어 이제 품질 향상을 위하여 단가계약(unit price contract)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답사했던 유럽의 병원건축 신축 현장에서 단가계약 방식을 적용하고 품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다. 즉 건축주, 시공사, 감리사 등 관계자들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실행 자료를 공유하면서, 오로지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하여 역량을 집중한다. 그들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을 추구하고 있다.
맺은 말
좋은 건축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좋은 건축은 여러 요소가 균형적으로 상향되어 해결되어야 한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하여 도시와 건축에서 치유 환경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현재 만연해 있는 고밀도/고층 아파트의 문제점과 치유 환경을 위한 개선점을 생각해 보았고, 공공건축에 있어서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품질 향상 방안에서 기획 업무의 중요성과 공사 계약 방식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건축에 있어서 품질 향상을 위하여 건축의 전 과정에 대하여 사후평가제도를 통하여 결과를 다음 프로젝트에 환류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